1. 독특한 집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집은 '생명을 담은 그릇'과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그릇이냐에 따라 그 속의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흙과 나무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흙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그릇은 생명을 보전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집도 그릇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좋은 그릇이 생명력을 오랫동안 보전하듯 좋은 집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집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집을 짓는 목적은 거주자의 안전에 있습니다. 거주자는 집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인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거주자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거주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설계자는 거주자의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집을 설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거주자를 위한 집을 지어야 하는것은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있습니다. 21세에 들어서부터는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을 위한 건축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건물 그 자체를 위한 건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환경문제 평론가 후나세 순스케는 "오늘날 건축가들은 예술적 건축이나 독창적인 건축에 심취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건축가들이 거주자를 생각하는 대신 자신들의 ‘건축적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해 있다는 사실을 꼬집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후나세 순스케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건축은 항상 약자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요즘 건축가들에게서는 더 이상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건축주의 의견이 설계에 잘 반영되어야
집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업용 건물과는 접근 방법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철저하게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위해 설계하고 시공되어야 합니다. 건축전문가라면 혹여나 건축주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며 예술작품과 같은 집을 짓기 원한다 하더라도 집의 가치를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건축주를 도와줘야 합니다. 집짓기 예산이 충분하지 못한 건축주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집 짓기를 계획하고 있는 예비건축주 또한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평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접근을 잘 못하면 그 기회가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평생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후나세 순스케는 '일본은 약자를 죽이는 비인간적인 건축물'로 가득 차 있다며 일본 건축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잘못 지어진 건축물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죽이는 건축물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건축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3. 노출콘크리트 주택, 묘한 매력은 있지만..,
후세나 순스케는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비인간적인 건축물 대표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노출콘크리트는 콘크리트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마감기법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은 콘크리트로 골조를 세우고 내부와 외부에 마감재를 사용해 콘크리트 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출콘크리트는 콘크리트에 다른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고 면을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은 ‘콘크리트 자체가 나타내는 독특한 조형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합니다.
노출콘크리트의 대가로 알려진 일본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1970년대부터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수많은 건물들을 설계했습니다.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저 기능만을 충족하려고 하면 따분한 짓밖에 하지 못한다.” 안도 타다오의 말입니다. 제가 앞서 얘기했던 의견-건축주의 의견이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에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감히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철학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리기에 저는 너무나도 부족한 건축가입니다. 하지만 '집'이라고 하는 특별한 용도의 건물을 설계할 때는 반드시 건축주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야 한다고 여전히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묵살해 버리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건축’ ‘독창적 건축’에 심취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본은 보육원, 학교, 양로원, 병원에 이르기까지 보호받아야 할 '약자를 위한 건축물'이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이 순간 유행처럼 번졌다 사라지면 좋으련만 오히려 일본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후세나 순스케는 문제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생명을 기른다'는 사명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습니다. 땅이 비옥하고 좋아야 농작물이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습니다. 집도 마찬가지로 농작물과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야 합니다.실내 환경이 좋은 집이라야 그 안에 사는 생명이 잘 자랄 수 있고 그 생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우리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 초등학교 등 노유자시설 대다수가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심신이 연약한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요양원 건물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병원은 또 어떻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건축 재료의 선택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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